학교앞 솜사탕 아저씨

 

솜사탕

아침 산책을 나섰다. 19도를 오가는 공기가 뺨에 닿았다. 차갑지 않고 서늘한, 걷기 딱 좋은 온도다. 12월 초의 하노이는 이렇게 맑은 날이 많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로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투명했다.

학교 울타리 앞을 지나다 발걸음이 멈췄다. 빨간 오토바이 한 대가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에는 작은 카트가 달려 있었고, 그 위로 솜사탕이 구름처럼 피어 있었다. 분홍빛 솜사탕들이 막대에 꽂힌 채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켐 옥 꿰(Kẹm ốc quế)'라고 쓰인 간판. 아이스크림과 솜사탕을 파는 노점이다.

노점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하지만 물건들은 그대로 있었다. 솜사탕, 아이스크림 박스, 푸른색 비닐봉지, 그리고 오토바이 핸들에 걸린 헬멧. 이 도시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물건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비워도 되는 곳. 신뢰가 바탕이 된 일상.

분홍빛 솜사탕을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사 먹던 솜사탕. 서울 외곽의 작은 학교였다. 하교 시간이 되면 교문 앞에 달고나 장수, 뽑기 아저씨, 그리고 솜사탕 할머니가 있었다. 솜사탕 기계가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설탕 실, 그 달콤한 냄새,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신기함. 그때 나는 몇 살이었을까. 열 살? 열한 살? 오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오십 년 전의 서울 교문 앞 풍경과 지금 하노이 학교 앞 풍경이 겹쳐졌다.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지만, 아이들을 기다리는 간식 노점이라는 본질은 같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이 오토바이 앞으로 몰려올 것이다. 솜사탕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기 위해. 그 작은 행복을 위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솜사탕 하나를 보면서도 오십 년 전이 떠오르고, 그 시간의 무게를 느끼는 것.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오히려 그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다. 서울의 나와 하노이의 나, 열 살의 나와 쉰아홉 살의 나. 그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

아침 햇살은 점점 강해졌다. 나무그늘이 만드는 그림자가 선명했다. 학교 뒤편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회 시간인가, 체육 시간인가. 젊은 목소리들이 공기를 채웠다.

오토바이 노점 옆으로 천천히 걸었다. 멀리서 노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었다. 아침 커피를 사온 모양이다. 그와 스쳐 지나가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도 미소로 화답했다. 말은 없었지만 아침 인사는 그렇게 교환되었다.

하노이에서의 일상은 이렇게 조용하다. 거창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맑은 하늘 아래 솜사탕 노점을 보고, 아침 햇살을 느끼고, 낯선 이와 미소를 나누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젊었을 때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의미 있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특별한 것은 이런 평범한 순간들 속에 있다는 것을.

학교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벤치 하나를 발견했다.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낡은 벤치. 잠시 앉았다. 19도의 공기가 딱 좋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몸이 편안해지는 온도. 12월의 하노이는 이런 날이 계속된다고 했다. 맑고 건조한 날들. 비가 올 확률도 낮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벤치에 앉아 솜사탕 노점을 바라보았다. 분홍빛 구름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저 솜사탕을 살 아이들은 지금 교실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수학? 역사? 베트남어? 그 아이들도 언젠가 나처럼 쉰 살을 넘길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어딘가에서 솜사탕을 보며 오늘을 추억할 것이다. '그때 우리 학교 앞에 솜사탕 아저씨가 있었지.'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내가 하노이에 온 이유를. 무엇을 찾아서 이곳까지 왔는지.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아침, 이런 순간들이 조금씩 답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벤치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과일이라도 사야겠다. 요즘 용과가 맛있다. 붉은 껍질을 벗기면 하얀 과육이 나온다. 시원하고 달콤하다. 아침마다 하나씩 먹는다. 사소한 루틴들이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뒤돌아보니 솜사탕 노점 주인이 오토바이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평범한 아침의 한 장면. 나는 그 장면을 기억 속에 담았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이런 순간들이 그리워질 것이다. 맑은 12월의 아침, 분홍빛 솜사탕, 나무그늘, 그리고 19도의 온화한 공기.

오늘도 하노이는 조용히 흘러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것. 솜사탕 노점 하나에서도 오십 년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여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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